비슷한 생김새의 아파트들이 곧 행진을 시작할 군인들처럼 대로변에 길게 늘어서 있다. 이는 이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지만, 때로는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사이에 놓인 도롯가에선 시민들이 산책을 즐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도시를 구경하려고 제법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다. 다만, 건물이 만드는 딱딱한 이미지 때문인지, 사람들의 표정은 왠지 차가워 보인다. 이처럼 «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는 19세기 새단장한 파리에 대한 도시민들의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가인 카유보트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답게, 이 그림에도 독특한 구도가 보인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는 전통적인 원근법과는 달리, 다수의 중심점을 만들어 실제 우리의 시각이 만들어내는 폭넓은 시선을 담아냈다. 덕분에 보는 이들의 시야를 꽉채우는 도시의 모습은 풍성한 감상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도시자체를 활기 있게 만든다. 거리의 시민들도 이 원근감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도시민들에게서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 전시 소개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150주년을 맞이해 화가이자 컬렉터인 구스타프 카유보트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미 앞서 올해 상반기에 인상주의 화가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회를 치른 오르세 미술관은 그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가였던 카유보트에 관한 전시를 진행해 그의 후원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그의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한번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개성이 뚜렷한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엘리트 교육을 받은 카유보트의 그림은 구시대적이라는 이유로 자국에서 오랜 시간동안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이 대부분 미국에 가있는 이유기도 하죠. 결국, 그의 작품은 그가 사망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주목을 받았는데요. 20세기 중반, 미국을 시작으로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시카고 소재의 «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과 같은 대표작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합니다.
‘신사다운‘ 그의 삶은 대개조 사업으로 달라진 파리의 모습을 누구보다 우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밖에도 그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치며 달라진 도시민들의 삶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새로운 인류의 출현과 이에 맞춰 나타난 가지각색의 군상들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경쾌하면서도 과감한 구도와 사실적인 묘사는 마치 그 시대로 빨려들어가는듯한 상상을 유도하는데요.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파리에서 만나는 그의 그림은 여행하는 이들에게 그 시절에 대한 현장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줍니다.
- 전시 사진
- 전시 정보
장소 :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전시제목 : 카유보트, 인류를 그리다(Caillebotte : Peindre les hommes)
전시기간 : 2024.10.08-2025.01.19
운영일시 : 매일 09:30-18:00 (목요일은 21시 45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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